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4일차 (29/03/2011)

2011. 4. 24. 16:21

 

 

    아침 9시가 다 되어 눈을 떴다. 1시간쯤 뒤척거리다가 결국 이불 걷어차고 몸을 일으켜보니 다른 룸메이트들은 여전히 자고 있다. 방은 이 녀석들이 어질러 놓은 짐과 옷들로 엉망이 되어있다. 어제 늦게까지 술 마시고 놀더니만 속옷도 아무 곳에 던져놓고…

 

    일단 체크아웃하고 나왔다. 비는 보슬보슬 내리는데 이제 뭘 해야 할 지 애매하다. 어제 마트에서 사놓았던 과자를 아침 겸 점심 삼아서 먹으며 시내쪽으로 향했다. 일단 시계에서 제일 큰 서점이라는 POWELL's BOOK STORE에 들렀다. 뭐 그냥 1층짜리 건물에 공대 관련 책들이 많다. 나야 컴퓨터를 전공하니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이게 다인가 싶어서 점원에서 물어보니 웃으며 길 건너 건물을 가르킨다. 내가 있는 곳은 그냥 IT분야 책의 일부를 팔고 있는 작은 분점이었을 뿐. 진짜 POWELL's BOOK STORE는 바로 길 건너에 큰 건물이다. 큰 건물 하나가 그냥 블록 하나 전체를 차지하는 큰 규모다. 세계 최대 규모라길래 축구장이나 야구장만한 크기의 서점을 기대했는데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서점 내를 다니다가 … 길을 잃었다. Purple Room, yellow Room, Red Room 등등 수 많은 색깔의 룸들로 책들을 구분해 놓았었는데 구조가 그리 잘 정리되어있지는 않아서 나 같은 길치는 건물 내에서도 길을 잃게 만들어져 있었다. 도대체 저 색깔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뉜건지 모르겠다. Red Room 이라고 해서 그렇고 그런 책들이 있는 건 아니던데…

 

    자, 이번엔 조금이라도 유명한 도시에는 항상 있는 차이나 타운을 가볼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지도를 들고 차이나 타운의 위치와 지금의 내 위치를 찾는데 지나가던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뭐 도와줄까?" 하고 물었다. "너랑 데이트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괜찮아요, 감사합니다"라고 해서 보내버렸다. 폭풍 아쉬움 ㅋㅋㅋ. 차이나 타운엔 뭐 별게 없었다. 늘 같은 느낌… 그냥 중국 느낌. 도시 자체가 한산한데 차이나 타운 역시 한산하다. "나는 전설이다" 영화가 생각났다. 다들 좀비가 되어 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쓰잘떼기 없는 상상은 그만. 바로 예술박물관으로 가기로 했다.

 

    MAX라는 포틀랜드의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예술 박물관으로 갔다. 시내에서 다니는 것은 공짜란다. 그냥 차도 위를 달리는 작은 지하철이랄까… 승차감은 지하철보다는 편안했다. 박물관 입장료는 학생 할인 받아서 9달러. 과연 만원의 값어치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서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뭐가 뭔지…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만원을 날렸구나 라고 한탄하는 순간 저 너머에서 가이드의 작품 설명 투어가 곧 시작된다는 가이드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다른 작품을 둘러보는 척 하면서 가이드에게 다가가 슬쩍 물어봤다. 공짜냐고. 당연히 공짜란다. ㅋㅋㅋ . 5분뒤에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여러 작품들을 돌아다니며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작품은 뒷전이고 가이드의 설명을 내가 알아듣고 호응도 하고 질문에 답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10개월간 어학연수 온 보람이 있구나… 아시아쪽의 작품들이 많았고 그룹에서 아시아인은 나 혼자였기에 가이드도 이것 저것 설명하면서 나를 좀 신경쓰는 듯 했다. 눈도 나랑 많이 마주치고.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무려 한 시간이 넘는 가이드를 받고 조금 더 혼자 둘러보다가 다음으로 근처에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가보기로 했다.

 

    데스크 직원이 왕친절하고 초명랑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짐 보관하는데 한국 대형 마트에서 짐 보관하듯이 동전을 넣고 키를 꺼낼 수 있는데 내가 동전이 없다니까 자기 동전을 빌려준다. 25센트. 달랑 300원이지만 완전 환하게 웃으며 25센트를 내게 건내는 그녀. 내게 반한걸까… 라는 개소리를 마음 속으로 지껄여보았다. 그럴리가 없지. 여하튼 이 곳의 작품들은 아까 예술박물관에서 본 것들이랑 약간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에이, 또 입장료 만원만 날렸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뭔가 눈에 익숙한 글자가 들어왔다. KOREA!!! 캐나다에서 많은 국가에 특파원(?)을 보내서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조사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아시아쪽의 나라중에 한국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한국의 먹거리, 생활 모습 등등…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한국의 옛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내가 곧 돌아갈 나의 고국이여~.

    밖으로 나와 보니 비가 좀 많이 온다. 겨울에 캐나다 서부를 여행하는 옳지않구나… 매일 같이 비와 함께해야하다니. 포틀랜드의 대형 쇼핑몰이라는 파이오니아 플라자에 가보았다. 어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을 때 "토다이"라는 해물 뷔페가 괜찮다던데, 막상 찾아가보니 영업을 안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쉬는 날이 아니라 아예 장사를 더 이상 하지 않는 듯. 배는 고픈데 뭐 먹을까 하다가 그냥 식품 코너에서 스시나 먹었다. 스시만큼 깔끔하게 먹을 만한 음식이 없는 것 같다. 8달러로 배 채우고… 이젠 또 뭐하지?

 

 

    이제 슬슬 포틀랜드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 일단 쇼핑몰에서 나왔는데 문 앞에 행위예술가가 있다. 온 몸에 은색 칠을 하고 가만히 서있는데… 이런 행위예술은 너무 흔하잖아! 그런데 이 때, 누가 동전을 행위예술가의 앞에 놓여진 통에 넣자 갑자기 구슬 쇼를 보여준다. 커다란 구슬 여러 개를 부드럽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엄청 신기했다. 그냥 사진을 찍으면 좀 그래서 1달러를 통에 넣어줬다. "Awesome, man." 라고 한마디 해주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터미널로 가다가 GROUND KONTROL이라는 곳을 발견. 어젯밤을 보낸 유스호스텔에서 목요일 액티비티로 이 곳에 와서 같이 즐겁게 놀자는 포스터를 봤었는데, 대체 이 곳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졌다. 한번 들어가보니… 그냥 오락실이다. 나름 자신있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할려고 했는데… 초등학교때 있던 스트리트파이터 따위랑 2층에 핀볼 뿐이다. 장사가 된다는게 신기하다. 가격은25C 또는 50C다. 한국은 비싸야 200원이면 게임 한판 할 수 있는데 비싸긴 비싸고 오락기는 엄청 후져요… 어휴. 스트리트 파이터 한판 대충 하다가 그냥 나왔다. 재미없다.

 

    포틀랜드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도착했다. 캐나다의 빅토리아로 가고싶다니까 밴쿠버까지만 갈 수 있단다. 인터넷엔 빅토리아로 가는 스케쥴이 있었다고 말하니, 그건 밴쿠버에서 환승하는거니까 밴쿠버에 가서 물어보란다. 그 쪽 터미널에서 따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서 여기서 한번에 빅토리아로 가는 티켓을 줄 수는 없단다. 어짜피 캐나다 어디로 가던 밴쿠버는 거치게 되므로 일단 밴쿠버로 가기로 했다. 디스커버리패스를 보여주고 밴쿠버행 티켓을 받았다. 우와!!! 지금껏 이렇게 고급스런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 각 좌석마다 전원 플러그가 있고 버스 내에서 Wi-Fi로 무선인터넷을 즐길 수가 있다. 밴쿠버에 들리기 전에 씨애틀에서 한번 환승을 해야하는데 씨애틀까지의 4시간은 아주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버스타면 잠만 잤었는데 ㅎㅎㅎ.

 

컴퓨터로 대충 여행 일정 다시 한번 확인하고 여행기 살짝 정리하고 하다보니 금방 4시간이 훌러덩… 씨애틀에 내리자마자 배가 고파서 바로 맥도날드로 향했다. 씨애틀의 다운타운 지리는 이미 내 손바닥 안이다. 다음 갈아탈 차 출발시간까지 40분남았으므로… 허기부터 달랠 샘이다. 난 딱히 선호하는 햄버거가 없어서 아무 콤보 번호를 불러주고 달라했다. 크리스피랑 뭐 어쩌고 저쩌고 선택하란다. 난 이런거 모른다. 그냥 크리스피 달라고했다. 씨애틀 버스터미널에서 햄버거를 맛나게 먹고, 밴쿠버로 향하는 버스로 환승했다. 이제 다시 캐나다로!!! 이번에 탄 버스는 전원플러그가 없는 그냥 일반 버스. 잠이나 자다보니 캐나다-미국 국경에 다다랐다. 이민국사무소에서 내가 1등으로 인터뷰. 밴쿠버에서 학생비자로 공부하다가 미국 며칠 다녀왔다고 했다. 내 여권을 보더니 학생비자가 almost done이라고 하길래 그렇다고, 그래서 다음주에 우리나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학생 비자 있냐고 묻길래 홈스테이 집에 놔두고 왔다니까 그냥 여행비자로 처리해버리더라. 순간 학생비자 안 갖고 있으면 입국 못 할까봐 조마조마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무사통과. 입국 심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탔다. 이제 캐나다 땅… 밴쿠버로 다시 향하는 버스… 밴쿠버에 내리면 새벽2시인데 내리면 뭘 하지?

박상근 여가생활/여행

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3일차 (28/03/2011)

2011. 4. 20. 05:07

    씨애틀인지 쉽게 잠 못 이루지 못하고 설치다가 새벽에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6시 30분. 완벽한 타이밍이다. 오리건주의 포틀랜드로 떠나는 버스가 아침 8시에 있으니 씻고 아침 챙겨먹고 터미널로 가면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5분만 더 자기로 마음먹고 눈을 감았는데 50분을 더 자버렸다. 7시 20분. 그냥 쿨하게 오후 1시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다니니 이렇게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 기보다는 나는 정해진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무계획으로 마구 결정을 바꿔가며 하는 여행이 낯설지만 상관없다. 일단 씻고 어제와 똑 같은 메뉴의 호스텔 아침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어짜피 빵과 과일인지라 금방 소화가 되버리겠지.

 

    어제까지 이틀간의 여행을 블로그에 남기기 위해 사진과 글을 정리하고 페이스북을 하며 잠시 시간을 때웠다. 11시가 체크아웃 시간이라 잠시 쉬다가 여유있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표부터 구해놓고 어제 못다한 시내구경을 다닐 생각으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체크아웃을 했다. 포틀랜드행 버스 출발 시간은 오후 2시. 백팩을 등에 짊어지고 한손에는 노트북가방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디카를 든 채로 그레이하운드 버스 터미널이 있는 다운타운까지 가는 도중 특이하게 생긴 큰 건물을 발견했다. 입구에 Return Book 이라는 회수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바로 어제 깜빡하고 들러보지 못했던 씨애틀 도서관! 도서관이 한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한 블록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ESL 파티션에 가서 괜히 Advanced에 있는 책들 좀 훑어보다가 Korean 파티션에 가서 오래된 한국 책들이 전시된 것들도 보다가… 작은 소극장 같은 곳을 발견했다. Microsoft에서 기증한 Microsoft Auditorium 이란다. 씨애틀에 Microsoft 본사가 있어서 이런 기증도 받나보다. 사실 MS 본사도 들러보고 싶었는데 다운타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좀 외곽으로 나가야 했기에 그거 하나 밖에서 구경하려고 가보기엔 시간이 아까워서 가보질 않았었다.

 

    초라한 씨애틀 그레이하운드 버스 정류장에 도착. 씨애틀이라는 이름과 다운타운의 수많은 고층 빌딩에 걸맞지 않게, 아주 작고 촌스럽고 조금은 지저분하기도 하다. 몇 년 전에 군생활 할 때 휴가때마다 들리던 옛 원주터미널이랑 흡사한 모습이다. 원주 터미널, 지금은 새로 바뀌어서 좋아졌다던데…

 

    아직 승차 시간까지는 거의 1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한 두 사람씩 줄을 서기 시작하자 너도 나도 따라 줄을 선다. 나도 잽싸게 순위권으로 줄을 섰다. 출발 30여분 쯤이 되자 줄이 길어서 아예 터미널 바깥까지 이어져있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분은 줄이 건물바깥까지 이어져있는데도 멀뚱히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직원한테 이 줄이 포틀랜드로 가는 줄이냐고 묻더니 뒤늦게 저 뒤로 가서 줄을 선다. 포틀랜드로 가는 줄 알았으면 내가 줄서라고 말해줬을텐데.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안되서 창 밖으로 비가 쏟아진다. 아아… 이번 나의 여행은 비와 뗄 수 없는 인연인가보다. 자다가 눈뜨기를 열댓번 반복한 끝에 4시간여만에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터미널이 굉장히 넓고 깔끔하다. 도착하자마자 씨애틀에 도착했을 때 어리버리까던 때와는 달리 잽싸게 현재 위치 파악 후 미리 메모해두었던 포틀랜드 유스호스텔 위치로 향했다. 걸어서 12블록. 계속 도로를 건너는데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일단 멈춰섰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지나가던 차도 정지선에 멈춰서는 나보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다. 오히려 차에게 양보하는 내가 약간 쌩뚱맞다는 표정이다. 작년에 캘리포니아 탐방 후 귀국했을 때, 공항에 나오자마자 미국에서 하던 대로 건널목에서 안심하고 건너다가 택시에 치일뻔했던 기억이 난다. 서양의 이런 보행자를 배려하는 문화는 본받아야 할 듯. 사람이 먼저지 차가 먼저가 아니니까.

 

    쉽게 호스텔을 찾았다. 약간 펜션 같은 느낌이다. 씨애틀에서 같은 버스를 탔던 어떤 여자여행객이 짐이 너무 많아서 호스텔 앞 계단에서 낑낑대고 있길래 좀 도와줬다. 커다란 캐리어에 커다란 배낭에 이불을 들고온건지 2m는 되어보이는 초무거운 침낭백까지 들고있다. 세상에 덩치도 작은데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런걸 다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자기는 뉴질랜드에서 왔단다. 뭐 여하튼 이런 간단한 도움 주고 영어로 대화 좀 했다. 이런 사소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으하하.

 

    이 곳에서의 하루 숙박은 단돈 24$. 씨애틀에서보다 12$이나 싸다. 대신 아침 제공이 없다는 것이랑 시설이 씨애틀에서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지낼 만하다. 6인실을 배정받고 들어가보니 침대는 마구 어질러져 있는데 아무도 없다. 일단 저녁시간이므로 대충 짐을 정리하고 호스텔 직원에게 물어 근처에 있는 마켓으로 갔다. 아뿔사, 라면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 서양 마켓이다. 다운타운에 차이나타운이 있다던데 그 쪽의 마켓에나 가야 한국라면 구할 수 있을 듯. 달랑 하루 묵을 건데 뭐 재료 사서 요리를 하기도 마땅치 않고 뽀글이도 해먹을 수 없고 대체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뭐 치킨 어쩌고 저쩌고 라고 되어있는 냉동식품을 샀다. 전자레인지에 10분만 돌리고 먹으면 된다고 적혀있다. 군시절 PX에서 냉동먹던 그 때 그 시절이 기억난다.

 

    바로 호스텔로 돌아오지 않고 동네를 살짝 돌아보았다. 유럽풍의 특이한 건물들이 많다. 유럽풍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유럽풍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씨애틀과는 사뭇 다른 느낌. 호스텔로 돌아와 10분 돌려야 하는 냉동음식을 배가 고파서 9분만 돌리고 꺼내보았다. 치킨 덩어리 2조각이 양념이 되어있다. 기름기가 약간 고인 것이 그리 먹음직 스러워 보이진 않지만 나이프와 포크를 꺼내서 스테이크 먹듯 썰어먹었다. 젓가락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호스텔에 젓가락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챙겨오는건데, 여기서도 첫 여행 티가 팍팍나고 있다.

 

    아무도 없는 내 방에 들어와 포틀랜드 다음 목적지로 어디가 좋을지 찾아보고 있는데 어느 외국인이 들어온다. 맥주먹고 있는데 같이 먹자고 하길래 속으로 앗싸라비아를 외치며 따라나가서 맥주 한 캔 얻어먹고서 같이 맥주 먹던 녀석들과 밖으로 나갔다. 2명은 영국녀석, 2명은 미국녀석들. 밖에서 다같이 담배를 피며 서로 어디서 왔냐 어디어디 가봤냐 등을 묻는다. 물론 나는 비흡연자이므로 제외. 그러다 한국 이야기가 나오고 남북으로 갈라진 이야기를 하다가 나 군인이었다라는 말을 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Cool, Awesome 등… 나랑 주먹도 부딪혀주고 안고 하면서 축제분위기다. 그리고는 사람 죽여봤냐고 묻는다. 내가 한국에선 개나소나 군대 다 가고 사람죽여본 군인 거의 없다고 했는데도 군인이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가보다. 대충 떠들다가 근처 펍으로 향했는데 펍 바로 앞에서 애들이 들어가길 머뭇거린다. 펍 앞에 만21세 미만 입장 불가라고 붙여져있다. 만 20세도 아니고… 나와 다른 한명을 제외하고는 다 만20세다. 이런 어린것들… 결국 들어가자마자 바로 튕겼다. 한 녀석은 직원한테 신분증을 보여줄 때 직원에 Sorry라면서 돌려주자 only one month 라면서 봐달라는 표정을 짓는다. 한 달 뒤에 만21세 된다는대도 얄짤없다. 결국 우린 24시간하는 타코 가게로 들어갔다. 멕시칸 음식 타코를 파는 맥도날드 같은 곳이다. 거기서타코 한 셋트씩 시켜먹었는데 딱히 한국인 입맛은 아니다. 약간 빵 쉰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테이블에 다섯이서 앉아서 내 귀에 들리는 영어는 50%가 Fucking 이었던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어린 것들이 입에 "존나"를 달고 사는 것마냥 모든 말에 Fucking을 붙이고 있다. 내가 계속 무슨 말하는지나 알아들어먹으면서 타코나 먹고 있자 나보고 왜 조용히 있냐고 묻는다. 난 그냥 너희들 말하는거 알아먹는거에 만족하고 있다니까 이제 나의 스피킹 차례란다. 나도 똑같이 Fucking을 써서 몇 마디 해줬다. Your speaking is fucking fast 등등 몇마디 해주자 또 난리났다. 영어 잘한다고 띄워주길래 신나서 Fucking 몇 번 더 넣어줬더니 내 영어는 완벽하단다. Fucking 쓰면 영어가 완벽해지다니, 영어 참 쉽다.

 

    타코를 다 먹고 나니 더 이상 뭐 할게 없어서 그냥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나는 내일 계획도 안세우고 다음 목적지도 아직 안정해졌기에 바로 내 방으로 들어와서 인터넷 검색질을 다시 시작했다. 일단 미국에서의 일정은 포틀랜드가 끝이었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려는데 캐나다 서부로 가는 대부분의 경로는 밴쿠버를 다시 지나야 한다. 밴쿠버에서 씨애틀까지 내려오는데 4시간, 씨애틀에서 포틀랜드로 내려오는데 또 4시간이 들었으니, 최소한 여기서 밴쿠버까지 돌아가는데는 최소한 8시간이 걸린다. 딱히 내가 밴쿠버로 다시 가서 할 것은 없었기에 밴쿠버가 아닌 그 근처 도시로 가는데 가장 짧게 걸리는 곳이 14시간씩 걸린다. 밴쿠버나 씨애틀에서 몇시 간씩 다음 갈아탈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기때문이다. 안그래도 짧은 9박 10일인데 버스안에서 시간 다 보내게 생겼다. 뭐 어쩔 수 없이 빅토리아로 향하기로 했다. 소요 시간은 밴쿠버 터미널에서 새벽에 5시간 대기할 각오를 하고 총 18시간 소요. 하루 숙박비는 노숙으로 아낀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얻은 포틀랜드 관광지도에 내일 들릴 주요 장소들을 펜으로 표시하고 잠들 준비를 해야겠다.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 부엌에서 남은 맥주를 처리하던 녀석들이 한 명씩 들어와 곯아떨어진다.

 

박상근 여가생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