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2일차 (27/03/2011)

2011. 4. 20. 04:52

    어제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씨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가 있다던데, 내가 어제 씨애틀에서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빗소리에 눈을 떳다. 젠장할, 오늘 씨애틀 시내 구경할 예정인데 비가 오다니…

 

    일단 좀 씻고 부엌으로 갔다. 어제 체크인할 때 아침식사로 팬케잌이 나올거라 하더니 빵 2종류와 바나나, 오렌지, 사과 쥬스, 우유 이렇게 있다. 한 접시 가득 담아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 같다. 이 정도 포만감이면 저녁까지도 거뜬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곧 착각이 되었지만…

    체크아웃 하면서 오늘 밤도 더 머무르고 싶다고 하자 그러라고 하면서 바로 키카드를 갱신해준다. 난 따로 체크인시간까지 못 들어가고 기다려야 하는지 알았는데 그런거 없이 지금부터 내일까지 계속 쓰란다.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3$내고 쓸 수 있는 라커에다가 짐 넣어놓고 다운타운 구경 후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지금 바로 이용 가능하다니 다시 올라가서 라커에 노트북과 물만 빼고 다 집어넣고 잠그었다.. 이제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내로 향했다.     

 

    어제 호스텔에서 얻은 씨애틀 다운타운 지도를 펼치고 바로 퍼블릭 마켓으로 향했다. 씨애틀도 밴쿠버처럼 거리가 참 구성이 잘되어있어서 길 찾기가 정말 쉽다. 퍼블릭 마켓에 들어서자 이제 갓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다. 주로 꽃가게나 공예품가게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는 않아서 10여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반대편 끝으로 빠져나올 수 이었다. 그런데 바로 도로 건너에 사람들이 어느 가게에 줄을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갈색 간판의… 스타벅스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스타벅스 1호점!!! 듣던 대로 아주 작은 테이크 아웃 전문점이면서 1호점 답게 여러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난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그냥 들어가서 사진이나 찍었다. 기념품을 사더라도 더 이상 캐리어에 기념품 따위 넣을 공간이 없으므로 당연히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어짜피 나는 기념품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침에 먹은 빵과 과일이 순식간에 소화가 되고 배에서 연료공급을 촉구하는 신호를 울린다. 점심은 뭘 먹을지 먹을 만한 식당이 있나 두리번 거리다가 퍼블릭 마켓 안에서 한국음식 가게를 발견했다. 메뉴 중에 Dosirak(도시락) 이라는 것도 있다. 이걸로 주문하자 아주머니께서 뭐라고 묻길래 Sorry? 했는데 아줌마가 I think you are Korean라고 하신다. Yes 했더니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왜 한국말 세 번이나 했는데 못 알아듣냐며 쌀밥이랑 프라이된 밥이랑 고르라고 하셨다. 한국인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한국말을 하실 거라고 예상 못 했는데 기습적으로 한국어를 쓰시다니… 밥과 함께 막 이것저것 담아주시는데 아무래도 나 귀엽다고 더 많이 담아주시는 듯 하다. 온갖 치킨과 튀김 등 왕 푸짐하게 담아주셨는데 7$ 밖에 하지 않았다. 내가 항상 추구하는 가격대비 성능의 이상향이다.

 

    퍼블릭 마켓을 한 세 바퀴는 돌고 나서야 스페이스 니들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씨애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뭔가 엑스포 탑 같은 것이 불쑥 솟아있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그게 스페이스 니들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엘리베이터 같은 것을 타고 탑 위로 올라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그것도 10$이 넘는 돈을… 그냥 시내 한번 구경하는 것 뿐인데 그런 돈을 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탑 사진만 찍고 근처에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로 갔다. 지도에는 EMP / SFM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Experience Music Project / Science Fiction Museum 의 약자란다. 이것도 입장료가 있는데 학생할인 받아서 12$을 내고 들어갔다. 작년에 실리콘 밸리 탐방갈 때 만들어 둔 국제학생증이 이럴 때 한번씩 쓸모가 있다.

 

    음악과 과학을 접목시켜 여러 가지 볼거리 등을 만들어 놓았다. 드럼이나 기타 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체험관이라던가 DJ가 되어볼 수 있는 DJ체험기 등. 그리고 여러 유명 음악인들의 일대기 또는 인터뷰 등을 볼 수 있었고, 심지어는 여러 명이 입장하여 나름의 콘서트를 하고 이 영상을 CD로 제작해주는 서비스도 있었는데 이 서비스는 별도의 요금이 필요했으므로 난 쿨하게 패스했다. (혼자였으니 같이 공연할 사람도 없고…)

 

    EMP / SFM을 나와서 주위 여러 건물을 둘러봤는데 다들 어린이들을 위한 센터였다. 주말을 맞이하여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부모님들의 모습이 참 부럽다. 내가 취직하고 나면 저런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말에도 일하느라 바쁠 듯한 나의 미래가 벌써부터 안타깝다.

 

    이제 무작정 시내로 향했다. 그러다 반스앤노블 서점으로 들어갔는데 씨애틀의 서점이라고 해서 막 거창할 것은 없었다. 그냥 부산의 교보 문고랑 별 차이 없는 듯. 그래도 책들이 캐나다보다는 훨씬 싸다. 지금은 미국 환율이 더 싼데 대부분의 책들이 캐나다달러로는 더 비싸게 받는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딱히 책 살 생각은 없어서 그냥 쇼핑몰과 이어진 다른 출구로 나왔다. 어쩌고 저쩌고 플라자였는데 난 워낙 쇼핑에 관심이 없는 터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가 아무것도 안 해보고 그냥 바로 내려왔다. 점점 다리가 아파온다. 오늘 하루 온종일 걷기만 한 탓이다. 밖으로 나오니 치즈 팩토리라는 건물이 있다. 씨애틀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아는 누님이 이 곳 음식 맛있다고 추천하던데 혼자가서 먹을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시간은 이미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점심을 빵빵하게 먹었기 때문에 배도 고프지 않았으니까. 이미 난 지쳐서 호스텔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가는 길에 씨애틀 방문자 센터를 들렀다. 뭐 볼 거 다 봐놓고 이제 들러서 뭐하겠냐마는… 컨벤션 트레이드 센터 1층의 구석 탱이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방문자 센터를 보니 뭐 별거 없었다. 미리 왔더라도 그다지 건질만한 것은 없었을 듯. 그냥 안내 데스크 하나에 여러 개의 투어 팜플렛들. 관광지도에는 무슨 방문자들을 위한 건물이 하나 딱 있을 것 같이 나와있더니만…

 

    5시가 다 되어 호스텔로 향했다. 차이나타운에 들어서자 돼지비계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어제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탓일까? 방에 들어오자마자 짐은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 뻗었다. 한 두 시간쯤 잔 것 같다. 어떻게든 저녁은 해결해야 하므로 어제 갔던 아시안 마켓에 갔다. 오늘은 뭔가 사서 요리를 해보려 했는데 막상 혼자서 한끼를 해먹을 만한 요리가 없다. 결국 또 뽀글이를 먹기로 했다. 어제는 라면이었으니까 오늘은 우동. 그리고 66센트짜리 싸구려 중국산인지 일본산인지 모를 음료수를 샀다. 한국 수정과 캔음료가 먹고 싶었는데 이건 99센트라서 사지 않았다. 독특한 맛의 음료수… 다음에는 33센트를 더 주고 검증된 음료를 마시리라…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어제에 비해 사람이 별로 없다. 쓸쓸히 우동 뽀글이와 음료수를 먹고 내일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벌써 여행 이틀째, 내일이 9박 10일의 일정 중 3일차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총알처럼 지나가는구나. 내일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러 가야 하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박상근 여가생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