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5일차 (30/03/2011)
새벽2시가 다 되어 밴쿠버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밴쿠버 터미널은 24시간 오픈인 줄 알고 역 내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노숙할 샘이었는데 터미널은 이미 문을 닫았다. 새벽에야 도착한 사람들은 터미널 옆의 쪽문으로 터미널을 나와서 다들 택시를 타거나 마중 나온 사람들을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이 야심한 밤에 나는 나홀로… 주위를 둘러보니 길 건너에 반가운 맥도날드 간판이 보인다. 맥도날드는 24시간 오픈!!! 4시간 전 씨애틀에서 맥도날드를 들러 햄버거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햄버거셋트를 하나 주문했다. 아무 주문도 안하고 안에 짱박혀 있는 건 좀 무례할 수도 있으니까.
주문한 햄버거 셋트를 받아들고 전원플러그가 있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비를 피해 들어온 노숙자 같은 분들도 몇몇 맥도날드 안에 들어와서 비를 피하고 계셨다. 약간 술이나 마약을 한 듯 눈이 살짝 풀린 듯한 사람도 두어명 보이는데… '설마 날 공격하진 않겠지?'. 일단 노트북을 켜고 무언 인터넷 신호를 검색했다. 어라…?! 없다. 아무런 Wi-Fi 신호가 없다. 물어보니 여기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 제공 안 한단다. 맥도날드는 24시간 오픈에 스타벅스처럼 무선 인터넷도 다 제공되는지 알았는데 어휴… 인터넷도 없이 무얼 하면서 날 샐 때까지 시간을 때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체스 게임이나 계속 하다가 머리를 써야 하는 게임을 계속 하다 보니 잠이 무지하게 쏟아진다. 마우스를 따로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을 할 수도 없고… 출국 전에 군대 가기전에 사둔 히어로즈 마이트 앤 매직 같은 턴 게임이라도 설치해올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잠들다가 체스 한판 하기를 무한 반복한 끝에,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아침 7시다.
인터넷이 너무나 하고 싶다. 뭐 인터넷에 연결한다고 해서 딱히 뭘 할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인터넷에서 다음 일정을 검색해야 한다. 밴쿠버 다운타운을 안 가본지 겨우 5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문득 다운타운으로 가고 싶어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그랜빌 역으로 갔다. 맨날 먼슬리패스만 이용하다가 2.5$을 지불하고 티켓을 사니 아까운 마음이 팍팍 든다. 10분도 안탈껀데 3천원을… 그랜빌역 지하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핫초코를 주문하고 Wi-Fi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니까 패스워드를 메모지에 적어준다.
일단 다음 목적지 검색부터… 어휴 여행 하면서 이렇게 다음 목적지를 찾는 시간이 제일 아까운 것 같다. 물론 아무 계획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나름의 맛이 있겠지만 이렇게 버스 일정표와 호스텔의 투숙 가능 여부 등을 잘 맞추려니 힘들다. 도시 한번 이동하는데 버스로 최소 4시간씩은 타야 하니 일정이 한번 꼬이면 치명적이다. 일단 오늘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출발 할 수 있는 일정을 찾아보았다. 나나이모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던 간에 호스텔에 빈 방이 없다. 지금은 비성수기중에 비성수기인데 왜 이렇지… 일단 밴쿠버에서 가까운 나나이모 섬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가까우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빅토리아로 이동하기도 쉽우니까. 게다가 내가 7개월동안 산 홈스테이 집 주소가 Nanaimo St였기에 도시 이름에서 조금 더 애착이 갔다. 페이스북도 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네이트온으로 수다도 좀 떨면서 쉬다가 다시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로 이동, 나나이모행 티켓을 발권받았다.
나나이모는 큰 섬이라서 버스를 타고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배가 1시간쯤 달려 항구쪽에 오더니만 대형 선박 Ferry호에 아예 버스가 통째로 들어갔다. 예전에 이 Ferry호를 타고 이탈리안 친구 두 명과 보윈 아일랜드에 당일 치기로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2시간여를 배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보냈다. 역시 사람은 제 때 잠을 자야 한다. 나나이모 섬에 도착해서 하차하기 전에 배 한쪽에 나나이모와 빅토리아의 지도 및 액티비티 안내 팜플렛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나나이모 다운타운 맵을 하나 챙겼다. 어딜 가든 이런 다운타운 맵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미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항구에서 내려 버스로 조금만 더 가니 나나이모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씨애틀의 도시스러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지도를 펼치고 유스호스텔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구글맵에서 검색했을 때 걸어서 3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천천히 걸으면서 여유를 느껴볼 샘이다. 바닷가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바닷가이기는 한데 해변처럼 모래사장이 있다기보다는 항구화(?)가 많이 되어 있다. 대신 공원이 많아서 몇몇 사람들이 산책로를 따라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30여분을 걷다가 여기가 어딘가 싶어 지도를 보니…! 이미 나나이모 다운타운의 반대편 끝까지 와버렸다. 다시 유스호스텔을 찾으러 뒤로 돌아 갓! 지금껏 들린 곳과는 틀리게 조금 작은 규모의 호스텔이다. 투숙객이 아예 없나보다 싶었는데 내가 체크인하는 동안 뉴질랜드에서 온 형제가 체크인하러 들어왔다. 음, 다행히 혼자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방을 배정받아 들어오니 깔끔하기는 한데 방이 좀 작다. 침대도 작고… 개인 물품 보관함도 없다. 그냥 아주 작은 서랍장 수준의 보관함과 시건장치. 침대는 내가 발 쭉 펴고 눕기엔 작은 크기. 참 아담하다. 다른 한 명이 이 방에 묶고 있는지 옷가지들과 가방이 보인다. 일단 짐을 좀 풀고 옷도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니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예상과는 달리 머리에 꽤 흰머리가 보이는 아저씨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캐나다인이란다… 어이쿠. 자기는 택시기사도 해봤고 초등학교 교사도 해봤고 컴퓨터수리공도 해봤단다. 전혀 연관성 없는 직업들인데… 자기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단다. 아, 그래서 이제는 여행중인가보다 싶어서 나나이모에 며칠이나 머물렀냐니까… 20년 동안 살았단다. '뭐야 이거, 여행객이 아니잖아!!!' 그냥 집 대신에 이 곳에 살고 있는 건가? 더 이상 자세히 묻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서 대충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 아저씨는 뭔가 할 일이 있는지 또 다시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저녁 시간이 다 되었기에 먹을 것을 사러 나갔다가 맥주와 냉동 파스타 2개, 베이컨을 사왔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배고프면 저녁먹으려고 내일 계획이나 짜고 있는데 룸메이트 아저씨가 들어온다. 내가 파스타 Buy 1 Get 1으로 사서 2개 있으니 같이 먹자 했더니 "Good, Good" 하더니 바로 자버린다. 나도 따라 자다 일어나니 어느덧 밤 9시. 아까 사온 베이컨과 냉동 파스타를 먹기로 했다. 냉동 파스타야 그냥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는데 베이컨은 어떻게 요리를 할지 몰라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그냥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볶기로 했다. 익으면 냉동 파스타와 비벼 먹어야지. 그런데 이게 5분을 넘게 볶아도 색깔이 변하질 않는다. 물이 점점 쫄아들고 있는데 베이컨은 여전히 붉은색이다. 볶고 볶고 볶고… 한 10여분을 볶은 것 같은데도 색깔이 그대로다. 뭔가 이상해서 하나 맛을 보니… 익은 것 같다!!! 베이컨은 돼지고기랑은 달리 익어도 빨간색인가보다. 냉동 파스타와 비벼 먹으니 오우, 맛이 제대로다. 요리는 허접하였으나 나의 허기와 요리에 대한 열정이 이 맛을 만들어냈다. 이제 맥주를 먹으면서 좀 쉴 타임이다. 부엌에 있던 두 청년한테 맥주 좋아하냐고 물으니 "No, Thanks." 자기들도 맥주가 있단다. 6개짜리 묵음을 샀는데 혼자 1캔 먹어봐야 5개나 남는데 이거 어떻하지… 창 밖을 보니 다시 또 비가 내리고 있다. 부엌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보니 시간이 훌쩍. 밤11시가 다 되니까 직원 아저씨가 이제 밤시간에는 부엌과 거실을 쓸 수 없다고 해서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 내일 일정은 빅토리아로 가는 것으로 정했다. 인터넷 상으로는 호스텔에 빈 방이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내일 아침에 빅토리아 유스호스텔에 전화해보고 빈 방이 있으면 여기 나나이모에서 더 놀다가 오후에 빅토리아로, 빈 방이 없으면 아침 일찍 빅토리아로가서 하루만에 여행을 끝내고 오후에 다른 곳 어디론가로 갈 계획이다. 벌써 이렇게 내 10일 여행 계획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