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7일차 (01/04/2011)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 맙소사. 무시하고 빅토리아 거리를 거닐기에는 너무 많이 온다. 우산을 쓴다고 해도 바지 밑단은 물론, 양말까지 젖을 기세다. 게다가 오늘은 시내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좀 누빈 후에, 보트를 타고 3시간짜리 고래관광을 가 볼 생각이었는데 비 때문에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 일단은 체크아웃하여 유스호스텔을 나와 어제 지나가다 보았던 Undersea 바다 생물 전시장에 가보았다. 배 안으로 입장하는 구조로 되어있길래 나는 배 안쪽 깊숙히 내려가서 수많은 희귀 바다 생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13을 내고 입장해서 좁은 길을 따라가며 배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 생물들을 구경했다. 아직까진 뭐 딱히 신기할 건 없는 것 같고… 조금 더 가다보면 괴물 같은 희귀 바다생물들이 나를 반겨줄 것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어라. 뭐 3분도 못 가서 끝이 보인다. 제일 안쪽에는 한 50여명쯤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한쪽에는 유리창이 있어 바다생물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스탭이 곧 쇼가 시작됨을 알리고, 잠시 뒤 유리창 너머 바닷속에 잠수부 한 명이 나타나 관객들에게 손을 흔든다. 그래서 몇몇 고기나 문어 같은 것들을 보여주고… 한 10여분간 그렇게 혼자 놀더니만 쇼는 끝이 났다. 아, 이렇게 30분도 채 안되고 $13이 날아가는구나.
어느덧 점심때가 다되어 어제 갔던 Bay센터를 다시 찾아갔다. 어제 스시를 먹었으니까 오늘은 한국가게에 가서 우동을 주문했다. 주문 받는 여직원이 귀엽상하게 생겼다. ㅋㅋㅋ 혼혈한국인처럼 생겼는데 한국말은 잘 못할 것 같았다. 요리하시는 어느 분이 우동을 건내주면서 Are you Korean? 이라고 묻길래 Yes라고 대답했더니 "김치 좀 올려드릴까요?" 하신다. ㅋㅋㅋ 우동 위에 김치 듬뿍 얹어받았다. ㅋㅋㅋ 여행하면서 처음 먹는 김치. 이것도 색다른 맛이다. ㅠㅠ
밥을 먹고 나니 만사가 귀찮다. 밖에는 비가 오고… 지도를 보면 박물관따위의 것들이 서너개 더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기가 싫다. 이미 Undersea 바다생물 전시장에서 기분 다 배렸다. 다른 박물관 가봐야 돈만 날리고 또 금방 나오겠지. 나의 마지막 종착지가 될 듯한 펜틱턴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짜피 또 밴쿠버 터미널에서 버스를 한번 갈아야야 하기에… 점심시간인 지금 일단 밴쿠버로 바로 가보기로 했다. 거기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펜틱턴으로 가는 버스를 탈 셈이다.
빅토리아에서 밴쿠버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없어서 다른 버스회사인 PLC 버스를 타야했다. 거금 $42를 내고서 버스 탑승… 인근 항구로 가서 버스 통째로 페리호에 들어갔다. 객실로 올라와서 전원어댑터가 있는 자리를 찾아 페리호에서 제공하는 무료 Wi-Fi 신호를 잡아서 페이스북이나 하고 있는데 앞에 어느 신사 흑형이 와서 인터넷 되냐고 물으셨다. 내가 되긴 되는데 좀 느리다니까 유튜브같은거 할 거 아니고 그냥 이메일이나 체크할 거라서 상관없단다. ㅋㅋㅋ 서로 한번 웃어주고 다시 자기 할 일. 이렇게 지루하게 페리호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버스 탑승 후 밴쿠버까지 2시간여를 더 가서 저녁때가 다되어 겨우 도착. 도착하자마자 일본인 친구 '나오'를 불렀다. 같이 한국인 식당에 가서 순대, 떡볶이, 비빔밥을 주문했다. 내가 떡볶이는 매워서 넌 못먹을거라고 경고 했는데 자기는 많이 먹어봐서 괜찮다고 우기길래 시켜줬더니만 나중에 결국 맵다고 물을 연신 들이킨다. ㅋㅋㅋ 나는 고추장 맛도 안나는데… 저녁을 먹고 헤어진 후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펜틱턴으로 가는 버스는 밤12시에 있는데 아직 오후 8시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때 까지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데… 책은 참 지루한 철학적 내용인데다가 외롭고… 심심하고… 집이 그립고…
어떻게 4시간여를 기다렸는지도 모른채 금방 12시가 되어 버스를 타러 들어가는데, 중간에 탑승자들의 짐검사를 한다. 그냥 버스를 타는데 왜 짐검사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일단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앞 사람에게 검사관이 술을 갖고 있는지 묻는 것을 들었다. 아뿔사, 내 가방에 맥주 5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이를 어쩌나… 분명 밴쿠버에서는 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이지, 버스탈 때 술을 소유하면 안된다는 말은 들은적이 없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지금이라도 당장 쓰레기통에 다 버려버릴까, 도망칠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휴, 결국 내 차례. 내 가방을 열면서 술 갖고 있냐고 묻자마자 "Yes, does it matter?" 하면서 맥주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냥 버스 안에서는 절대 먹으면 안된다는걸 명심하라는 말만 하고는 그냥 통과… 방금 몇분동안 완전 긴장해서 벌벌떨었는데 그냥 이렇게 통과다. 이럴꺼면 대체 술이 있는지는 왜 묻고, 짐검사는 왜 하는건지…어휴. 어쨌든 무사히 펜틱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일 새벽 6시가 다되어 도착할 예정. 오늘은 이렇게 숙박비를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