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8일차 (02/04/2011)

2011. 5. 3. 04:49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펜틱턴으로 향하는 길. 잠시 자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가 어느 깊은 산속을 달리고 있다. 이제 록키산맥이 시작되려 하는가… 사실 야밤이라 창밖을 봐도 뭐가 제대로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적인 비… 바로 그 비가 미친듯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작부터 불안하다. 자꾸 산 길을 달리는 것 같은데 빗길에 행여 사고가 나지는 않을지…

펜틱턴은 종점이 아니라 중간에 펜틱턴에 도착한다는 드라이버의 방송을 듣고 제 때 내려야했다. 세상 모르고 잠들었다가는 1시간 더 가서 켈로나에서 내리게된다. 켈로나는 버스터미널에서 유스호스텔이 있는 시내까지의 거리가 차를 타고도 몇 십분을 가야하는 거리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잘못 갔다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듯. 그래서 펜틱턴 예상 도착 시간인 5시 55분에 제대로 내리기 위해서 4시부터는 잠들지 않고 계속 정신차리려고 노력했다. 중간에 어디 잠시 들릴 때마다 설마 여기가 펜틱턴인가 싶어서 드라이버의 방송에 신경을 곤두세우길 여러 번… 결국 새벽 6시에 맞춰 버스가 펜틱턴 터미널에 도착했다.

 

매우 이른 시간인데도 어느 할머니께서 터미널에서 어디론가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다. 어디서 왔는지부터해서 한 30여분간 날 밝을 때까지 할머니랑 수다떨다가 난 이제 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작별인사를 했더니, 한국가서도 잘 살으라하시며 손을 흔드셨다. '손주보러 가신다는데 할머니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직까지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어휴, 이 망할 놈의 비. 버스안에서 터미널로 들어오기 직전에 우연히 유스호스텔 간판을 봤었기에 바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더니 오전 8시에 문을 연단다. 1시간 넘게 남았는데 그때까지 뭘 할까 하다가 오카나간 호수가 있을 만한 곳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한 10여분 걸어가니 호수가 나왔다. 이른 아침의 호수. 계속해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하는 동안 풍경사진만 찍어오다가 오늘은 처음으로 타이머 맞춰놓고 내 독사진도 찍어봤다. 영 어색하다. 풍경이 죽는다 나 때문에.

 

호숫가를 따라서 걷다보니 일본정원이 나온다. 그냥 1분만에 둘러볼만한 작은 일본정원이었는데 왜 여기에 쌩뚱맞게 일본정원이 있나 싶었다. 알고보니 펜틱턴이랑 일본의 이케다라는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사이란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여러가지 레저스포츠 액티비티를 위한 센터들이 나온다. 주로 여름에 문을 열기 때문에 지금은 다 정비중이다. 여름에 오면 이 호숫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아 물론 지금이 새벽 시간인 것도 있지만…

오전 8시까지 오카나간 호수 뿐 아니라 호스텔 근처를 쭉 돌아보았다. 토요일 아침 8시가 다 되어가는데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너무 조용하다. 배는 고파오는데 맥도날드나 스타벅스같은 흔한 가게들도 찾기 힘들다. 겨우겨우 24시간 편의점을 하나 찾아 샌드위치랑 카라멜우유를 하나 사서 배를 채웠다. 생각보다 너무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심심한 동네다. 일단은 그냥 자고싶다. 피곤하다.

8시에 맞춰서 호스텔로 들어가보니 데스크에 직원이 밝게 인사한다. 몇 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냐고 묻자 지금 당장 체크인 가능하단다. 우왕 굳! 체크인 하기위해 HI호스텔 회원증과 내 여권을 보여주자 한국인이냐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내가 발음이 끝내준다고 칭찬하자 좋아 죽는다. 내가 칭찬해줬는데 왜 내 영어는 발음 좋다고 칭찬해주지 않을까 하는 쓸떼 없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싼 방으로 달랬더니 6인실을 줬다. 단 돈 20$. 완전 싸다. 일단 방에 들어가자 누군가 한 명이 자고 있다. 그 사람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짐을 한쪽 벽에 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로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니 이미 오후 1시. 자던 한 사람은 어디론가 나갔다. 호스텔이 조용하다. 호스텔을 한번 쭉 둘러보니 이 동네 분위기에 걸맞는 작고 아담한 호스텔이다. 시설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더럽거나 하지는 않아서 뭐 그냥 쓸만했다. 그런데 내 방에서 큰 문제를 발견… 전원 플러그가 없다. 아무리 찾아도 전원 플러그가 없다. 내 방에서 노트북 못하는 건가.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려 했는데 오후 5시부터 오피스를 운영한단다. 아, 여기는 다른 대부분의 호스텔처럼 24시간 데스크를 운영하지 않는구나. 할 수 없이 노트북을 거실에 가져와서 충전시키며 간단히 메일이랑 페이스북을 체크하고, 혹시 내가 전에 찾아보지 못했던 펜틱턴에 대한 정보에 대해 더 찾아봤지만 뭐 딱히 없다. 펜턱턴이 들린 적이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펜틱턴은 아주 조용한 도시라는 것. 그리고 뭔가 행사나 레저스포츠는 여름에서 겨울 사이에 이용 가능하므로 가능하면 그 시기에 들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미 초 봄에 여기 와버린 것을 어떻하리… 체크인 때 받은 지도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비는 완전히 그치고 햇볕이 쨍쨍하다. 다시 한번 오카나간 호수로 향했다. 아침과는 분위기가 사뭇 틀리다. 호숫물도 반짝반짝 빛나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도 몇몇 보인다. 딱히 사진을 찍을 만한 풍경은 이 곳밖에 없는 것 같아서 계속 사진이나 찍다가 이것도 금방 질려서 지도를 펴고 도시 중심부로 향했다. 중간에 펜틱턴 공공 도서관을 찾아 들어갔는데 단층 규모의 아담한 도서관이다. 대충 한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펜틱턴 엽서라도 팔면 사려고 했건만… 유스호스텔에서 걸어서 2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나름 이 마을에서의 번화가가 있다. 그래도 아직 스타벅스까지 들어오지는 않은 듯. 한국의 읍내 정도의 분위기. 그래도 나름 적당한 규모의 세이프웨이가 있길래 여기 들어가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으로 먹을 냉동음식과 베이컨을 샀다. 예전에 나나이모에서 해먹었던 것처럼 냉동 식품에 내가 익힌 베이컨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을 생각이다. 다 된 밥에 베이컨 좀 넣을 뿐인데 마치 내가 요리사가 되는 듯한 기분이다.

 

호스텔로 돌아와서 냉동 식품 + 베이컨 조합과 맥주로 끼니를 때웠다. 창 밖을 보니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사실 내일 새벽 6시에 레이크 호수로 가서 오후에 도착 후 한 5시간 때운 뒤, 야밤에 밴쿠버행 버스를 타고 다음날 아침에 밴쿠버에 도착하는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달랑 4~5시간 있으려고 20여 시간을 버스타고 오갈 생각을 하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4월 5일 새벽비행기로 한국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피곤할 듯. 차라리 밴쿠버에 하루를 지내면서 그 동안 만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내일 아침 7시 버스로 밴쿠버로 돌아가기로 했다. 밴쿠버에 도착하면 오후1시가 조금 넘을 듯. 데스크에 가서 여기 8시에 오픈하기 전에 7시에 체크아웃 가능하냐고 물으니까 문제없단다. 디파짓으로 맡긴 10$을 미리 내주더니 열쇠는 어디에 넣고, 내 배게피랑 침대피 같은 것들은 어디에 놓고 바로 나가면 된단다. 호스텔 정문은 안에서 열고 나가면 자동으로 잠기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단다. 오케이.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3개월간 대학 부설 어학원의 펜틱턴이라는 이름의 반에서 지내온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도 펜틱턴에서 보내게 되는 구나. 문득 펜틱턴 클래스에서 함께했던 중국인 친구들이 그립다. 못 본지 2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내게 많은 중국어를 가르쳐줬던 중국녀석들... 씨에씨에~

박상근 여가생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