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9일차 (03/04/2011)

2011. 5. 3. 06:08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고 어제 사둔 냉동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늘 먹던 것처럼 베이컨을 얇게 썰어 볶았다. 다시 이 베이컨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더 돌리니 먹음직스런 인스턴트 음식 탄생! 내가 베이컨을 볶는 동안 다른 한 커플은 열심히 온갖 재료들을 준비해서 뭔가 대단한 음식을 준비하는 듯이 보였다. 더 맛있는 음식은 하나도 부럽지 않은데 그렇게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부럽다. 아침을 먹고 나니 이미 날이 밝았다. 짐을 챙겨 나와 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길… 아직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금방 걸어서 터미널에 도착했다. 디스커버리 패스를 보여주고 밴쿠버로 향하는 티켓을 받았다. 이게 내 여행에서의 마지막 티켓. 자꾸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붙기 시작한다.

 

버스가 출발했다. 펜틱턴으로 올 때는 새벽이라서 바깥 풍경을 전혀 보지 못했는데, 밴쿠버로 되돌아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오늘이 마지막임을 더 아쉽게 만든다. 잔잔한 호수… 이따금씩 보이는 야생동물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싸구려 디지털 카메라로 이 경치를 담아내려니 너무나 안타깝다. 조금 더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사진 속에 비치는 유리창과 내 그림자가 야속하다. 이미 4월임에도 불구하고 산간지역을 달릴 때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을 볼 수 있었다. 하긴 강원도에서 군생활 할 때는 5월에도 눈이 내렸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10여분 쉬는 동안 과자와 음료수를 사와서 버스 안에서 배를 채웠다.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딱히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는데, 다시는 캐나다에서 이런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버스 탈 일이 없다는 생각에 그냥 한번 사먹어 보는 것이다. 오후 2시가 다되어 밴쿠버에 도착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한 날 바라보던 터미널과 지금 여행을 마친 시점에서 바라보는 터미널… 이 둘은 부푼 기대와 그리움의 차이랄까.

 

터미널을 뒤로 하고 미리 같이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운타운으로 가야 했다. 아직 30여분 넘게 약속시간이 남았기에 스카이트레인 표값 $2.5를 아끼기 위해 다운타운까지 걷기로 했다. 겨우 2정거장이지만 직접 걸으니 30여분이 좀 넘게 걸렸다. 아직까지 내 가방에는 며칠 전에 샀던 맥주가 그대로 들어있다. 결국은 여행끝날 때 까지 다 먹지도 못하고 가져온 것이다. 다운타운에서 친구를 만나 일본음식점으로 갔다. 한국음식이야 이제 한국가면 실컷 먹을 테니까. 내가 7개월 전에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공항까지 마중나와 주고 교통수단 타는 법도 가르쳐주면서 내 하숙집을 찾아가도록 도와준 친구다. 한국에서 같이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사이인데 2년동안 서로 만나지도 못하다가 이렇게 캐나다에 와서야 봤었다. 그리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 이제는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다.

 

대충 뭐 만두 같은 것들을 주문해서 먹고 이것저것 캐나다 생활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다시 한국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어짜피 갈 곳 정해졌다. 내일 돌아가기로 했던 하숙집에 전화를 해서 지금 하숙집에 가고 있으니 하룻밤 돈을 내고 지내겠다고 하자 흔쾌히 OK하셨다. 집에 돌아와 세탁기도 돌리고, 여행도 끝났으니 캐리어를 풀어서 짐도 새로 싸서 딱 제한무게 23Kg에 맞춰놓았다. 이제 내일 밤에 공항에 가서 비행기만 타면 캐나다 생활 끝! 간만에 하숙집 아주머니가 해 준 제대로 된 저녁밥도 먹고 나니 피곤하다. 내 방을 돌아보니 달랑 캐리어2개, 백팩1개. 그리고 나. 비어있는 책장이 아직은 어색하다.

 

3개월간 같이 지낸 중국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공할 갈 때 짐 나르는 것을 도와주겠다더니 진짜 도와줄 셈인가보다. 나야 고맙지 ㅠㅠ. 마지막으로 내가 점심 대접을 할 테니 내일 점심때 시내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이제 중국인 친구와 영어로 대화하며 하하호호 하는 일도 마지막이겠지라는 생각이 문득. 자꾸 모든 것에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붙어간다는 것이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을 억누른다. 이런 느낌을 예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바로 4년 전에 군대 전역하기 전날과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다. 기쁘면서도 슬픈 그 느낌.

박상근 여가생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