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에서의 내 생에 첫 나홀로 여행 - 1일차 (26/03/2011)
드디어 나의 9박 10일 여행의 첫 아침이 밝았다. 어제 밤에 잠들기 전에야 씨애틀을 첫 목적지로 정했다. 무려 2주 동안 빅토리아를 첫 여행지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빅토리아는 밴쿠버와 가까우므로 마지막 여행지로 더 어울린 다는 나만의 근거없는 생각때문이었다.
여행 후 다시 돌아와서 바로 공항으로 갈 수 있도록 캐리어 2개에 각 23Kg씩 빵빵하게 짐을 쑤셔넣고 거실로 내놓았다. 그리고 홈스테이맘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출입현황판을 보니 부부동반으로 시장에 가신 듯 하다. (우리 홈스테이는 현관에 출입현황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으신다. 씨애틀로 떠나는 버스가 밴쿠버에서 2시에 출발하므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일단 시내로 나가서 HI(Hostel International) 멤버십 카드를 만들어야 했다. 이 멤버십 카드가 있으면, 그레이하운드 버스회사에서 이용 가능한 디스커버리 패스라는 정기권을 7일권 가격으로 15일권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는 세 곳의 HI 호스텔이 있는데 이 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을 찾아갔다. 사전에 구글맵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갔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구글맵에 표시되어있던 곳의 맞은 편에서 HI 호스텔 마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들어가서 멤버십 카드만 만들 수 있냐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간단한 양식을 작성하고 여권을 보여달란다. 5분도 안되서 카드 발급. 어디서 듣기로 40$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26$밖에 하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매일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지나면서 보던 건물인데 이 건물이 기차 및 버스 터미널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밴쿠버에 8개월동안 너무 얌전하게만 살아왔나보다. 표를 사려고 줄을 섰는데 짐에 관한 추가요금표가 보인다. 1개는 무료지만 1개 추가에는 10$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평범한 책가방에 노트북가방 이렇게 가방이 2개인데 이 노트북 가방 때문에 추가요금 10$을 내야하다니… 돈아까워서 가방 큰 것을 안사고 2개로 나눠 들고온 보람이 사라졌다. 금방 내 차례가 되어 씨애틀로 가는 표를 샀다. 여권을 보여주고나니 짐이 있는지 묻는다. 책가방이랑 그냥 노트북가방 있다고 하니까 그냥 OK 라고 한다. 따로 수화물용 태그를 주지 않는 것을 보니 추가 요금이 없나보다. 아 기분 좋다. 아직 버스 탑승시간까지는 30분이 넘게 남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는 순간… 씨애틀로 가는 표가 아니라 디스커버리 패스 정기권을 사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발권창구로 달려가서 방금 샀는데 환불하고 디스커버리 패스 사고싶다고 말했다. 내 표의 출발 시간을 확인하더니 환불이 안 된단다. 방금 막 표를 산거라고 미안하다고 에걸복걸하자 누구한테 이 표를 샸냐고 물으신다. 그래서 바로 이 옆옆창구의 아저씨를 가르키며 저 사람한테 1분전에 샀다고 말하니까 그 아저씨랑 뭐라뭐라 하더니 OK라고 하시며 환불해주신다. 결재했던 카드를 건내주며 땡큐를 연발했다. 환불 후 HI멤버십 카드를 보여주며 이거 있으면 7일짜리 살 돈으로 15일짜리 정기권 살 수 있다고 들었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맞다고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신다. 역시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이 계속해서 도움이 된다. 239$에 15일 그레이하운드 정기권 구매 완료. 아주머니가 정기권을 주면서 캐나다에서는 그냥 바로 쓸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이 정기권을 보여주고 따로 티켓을 얻어서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고 하시며 씨애틀행 표 및 세관신고서도 같이 주셨다. 웃으며 여행 잘 하라고 하시는 아주머니가 이제는 천사로 보인다.
2시가 다되어 가자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직접 표와 여권을 체크하신다. 내 차례가 되어 내 여권과 표를 보여주자 독특한 엑센트로 뭐라뭐라 물으신다. 온라인으로 비자 신청 했냐는 말인 것 같다. 난 작년에 미국 두 번이나 갔다왔는데 뭐 또 신청해야되냐니까 오케이, 굳을 연발하며 날 탑승시켜주셨다. 작년 초, 학교의 지원을 받아 친구3명과 실리콘밸리 탐방 및 캘리포니아 여행을 다녀왔고, 작년 9월에는 어학원 친구들과 렌트해서 씨애틀 프리미엄 아울렛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혼자서 가게 되니 좀 긴장된다.
버스에 타자마자 바로 세관신고서부터 다 작성하고, 한국에서 가져왔으나 읽어보지도 못했던 베스트셀러 "정의" 한글판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된 책을 너무 오랜만에 읽는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미국으로 가는 국경에 다 와가자,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과일이나 뭐 상품같은거 있으면 세관신고서에 적고 세관서 직원들한테 말하라는 말을 하신다. 그제서야 아침에 집을 나올 때 가방에 바나나를 하나 넣어왔던 게 생각났다. 세관신고서에는 과일 따위 없다고 체크했는데…, 일단 급히 바나나를 꺼내서 먹어버렸다. 하지만 껍질은 치울 방법이 없어서 가방에 다시 넣고서 혹시나 걸리면 이건 바나나가 아니라 껍질이라고 우기기로 했다. 이러나 쫓겨나서 미국 못가게 되면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것인가 라는 걱정과 함께…
내가 세관검사에서 1등으로 줄을 섰는데 비자가 만료됬다고 비자 신청 다시 해서 오란다. 아까 버스기사 아저씨가 버스탈 때 초록색 종이 흔들면서 나한테 비자 묻던게 바로 이거였구나… 3개월이 지나면 비자 만료된다는데 난 작년 9월에 미국왔었으니까 지나도 한참 지났지. 다시 작성 후 꼴지로 세관통과했다. 짐 검사하는 곳에서 내가 사실 바나나껍질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자 바나나는 상관없단다. 아주 간단하게 모든 검사 완료. 다시 버스 탑승 후 씨애틀로 향했다. 한 30분 지나자 작년에 이탈리안 페데리코 형님과 함께 직접 카 렌트로 왔던 씨애틀 프리미엄 아울렛이 나온다. 페데리코 형님은 잘 지내시는지…, 사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려 했었는데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서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신혼여행때나 갈 수 있을 듯. 문득 페데리코 형님이 무지무지 보고싶어졌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서 씨애틀에 도착했다. 이제 유스호스텔을 찾을 차례. 낮에 내가 가입했던 HI호스텔로 가입된 호스텔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을 하기 위해 커피숍을 찾아 들어갔다. 난 커피를 안먹으므로 쿨하게 핫초코 스몰사이즈를 주문했다. 그리고 무선인터넷 쓰고싶다니까 패스워드 그런거 없고 그냥 att로 시작하는 신호 잡아서 인터넷 켜면 약관나오니까 체크하고 동의클릭하면 바로 쓸 수 있단다. 예전에 블렌즈 커피숍은 커피든 뭐든 주문해야 따로 패스워드같은거 받아서 2시간 쓸 수 있던데, 스타벅스 무선인터넷은 패스워드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핫초코를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에 돈이아까웠다. 이 핫초코를 오늘의 저녁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찾는 유스호스텔이 걸어서 한 20여분 거리에 있었다. 수많은 고층 빌딩사이를 서울 처음 온 촌놈마냥 두리번 거리며 걸어간다. 밴쿠버도 그렇지만 여기도 참 거지들이 많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분위기가 약간 음산하게 변했다. 인적도 그리 많이 않고 군데 군데 행실이 좋아 보이지 않는 형님들이 무리를 지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침을 뱉고 계신다.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하면서 유스호스텔이 있어야 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못 찾겠다. 역시나 구글맵이 약간의 에러를 보여주시는 듯. 분명 씨애틀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 바로 보여야하는데 전혀 보이질 않아서 30여분을 멤돌았다. 중국가게들 틈에 끼여있는 HI 마크가 윈도우에 프린트되어 붙여져있는 호스텔 발견! 나는 지금껏 따로 HI마크의 간판을 찾고 있었는데 여기는 간판이 American Hostel 이다. 윈도우에 내 손바닥만한 HI마크 딱 붙여놓고서는… 여하튼 반가웠다.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다행히도 자리가 있단다.
4인실 방을 받아서 들어가니 어떤 동양인이 내 침대의 2층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한국인한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일본인이라고 하면 "아나따와 니혼진데스까?, 와따시와 칸코쿠진데쓰"라고 말하고, 중국인이라고 하면 "니슈중궈런마? 워슈한궈런"이라고 해줄려고 했었는데… 잉글랜드에서 왔단다. 이름은 사이먼. 그래서 그냥 "나이스미츄"밖에 해주질 못했다… 캐나다에 8개월을 있었으면서도 아직 동양인을 보면 국적도 동양일 것이라는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까 먹은 핫초코로는 저녁 해결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켓을 찾아 나섰다. 한블럭 건너서 아시안 마켓이 있다. 차이나타운이라 아시안마켓이 있나보다. 의외로 일본음식 뿐 아니라 한국음식도 많았다. 컵라면 뿐 아니라 김치 및 소스 등 거의 모든 것을 팔고 있었다. 이 주위에 한국인들도 많이 사나보다. 딱히 한끼 해결할만한 것이 없어서 간지나게 삼양라면을 사와서 뽀글이를 만들었다. 스프를 넣고 이제 뜨거운 물을 넣으려는데 옆에서 막 뭔가 요리를 끝낸 중국 처자가 내게 조용히 자신이 다 쓴 작은 냄비를 건낸다. 내가 필요없다고 하고 뜨거운물을 바로 봉지라면에 넣어버리자 살짝 놀라는 눈치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예비역의 강인한 생존력이라는 메시지를 한 껏 풍기며 한 쪽에 자리 앉아 아이팟으로 페이스북이나하며 뽀글이를 먹었다.
방에서는 인터넷이 잘 잡히지 않아 휴게실로 노트북을 들고 나와 내일 씨애틀 시내 관광 일정을 짜고 있는데 어떤 키 큰 외국인이 와서는 자기 노트북이 10분뒤에 자꾸 절전모드로 들어가는데 고치는 법 아냐고 묻는다. 옆에서 인터넷을 하던 내 룸메이트 사이먼이 자기가 봐주겠단다. 이 녀석의 영국 엑센트를 자꾸 듣다보니 좀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캐나다에서의 영어엑센트, 그리고 지금 이 곳 미국에 와서 듣는 미국 엑센트, 그리고 룸메이트의 영국엑센트가 다 틀리다. 내가 언제 이런 엑센트까지 듣게 되었나 싶다. 예전엔 그냥 영어는 영어일 뿐이었는데… 여하튼 사이먼이 잠시 보더니 자기는 모르겠단다. 알고보니 그 키 큰 외국인의 노트북에는 운영체제가 윈도우가 아니라 쿠분투였다. 나는 우분투와 윈도우7을 쓰고 있지만 쿠분투를 직접 쓰고 있는 사람은 처음 봤기에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뭐라고 블라블라 말하는데 내가 잘 못 알아들어서 쏘리를 2번이나 연발했다. 자기 나라 이름을 말하는데 못알아들으면 실례인 것 같아서, 그냥 아하~ 하면서 아는 척 했다. 밀라노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내가 네 나라에서는 쿠분투가 대중적이냐고 하니까 노트북 여기 와서 샀단다. 그래서 설정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내가 쿠분투를 써본적은 없지만 어짜피 그런 기본적인 설정이야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냥 Setting 에서 Power Managerment 찾아서 원하는대로 고쳐줬다.
밤12시가 다 되도록 인터넷으로 여행계획을 짰다. 원래는 오늘 밤에 씨애틀 좀 둘러보고 내일 오전에 마저 둘러보고 오후에 떠날 생각이었는데 내일 하루종일 씨애틀 구경하고 모레 일찍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목적지는 아마도 오리건주의 포틀랜드가 될 듯. 앞으로 남은 9일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어쨌든 나의 첫 여행 첫 날은 이렇게 무사히 지나간다.